길 이야기

보신각 종이 울리는 거리

저녁 10시에 28번, 새벽 4시에 33번. 종소리 하나가 한양 사람들의 하루를 열고 닫았습니다.

주소찾기 편집팀 · · 수정 · 2분 읽기

새벽 종각 사거리, 현대식 건물과 텅 빈 차선 사이에 남은 보신각 누각

저녁 10시경, 보신각에서 종이 28번 울리면 한양의 성문이 닫혔습니다. 백성들은 그 소리를 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종로는 '종이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한양의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루(보신각)가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소리에는 각각 이름이 있었습니다. 저녁의 28번은 '인정(人定, 사람들이 고요해짐)', 새벽 4시경의 33번은 '파루(罷漏, 밤을 알리던 물시계를 멈춤)'였습니다. 파루가 울리면 성문이 열리고 하루가 시작되었죠.

종로는 이렇게 한양 사람들의 하루를 규율하던 시계탑 역할을 했습니다.

종로는 조선 최대의 상가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구름처럼 사람이 모인다'하여 운종가(雲從街)라고도 불렀죠.

종루 주변에는 육의전(비단·무명·종이·어물·모시·명주를 파는 6대 특권 상점)을 비롯한 시전이 줄지어 서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온 상인과 백성들로 북적였습니다.

지금도 매년 12월 31일 자정,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 타종식이 열리는 곳이 바로 종로 보신각입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33번의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기원합니다.

다만 '600년째 같은 자리'는 아닙니다. 종루는 1398년 청운교 서쪽에 처음 섰다가 1413년 통운교(지금의 종로 네거리)로 옮겨졌습니다. 자리는 몇 번 바뀌었고, 이어진 것은 종소리가 하루를 나눈다는 관습 쪽입니다.

600년 전에는 그 종소리가 성문을 여닫았고, 지금은 한 해를 엽니다. 타종이 끝나면 사람들은 종각역 계단으로 흩어지고, 보신각은 다시 차선 사이에 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편액이 종각에 공식적으로 걸린 것은 1895년, 고종이 아직 조선 국왕이던 때입니다(황제를 칭한 것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널리 믿음을 베푸는 누각'이라는 뜻이죠. 그 원 현판은 6·25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걸린 현판은 1953년 중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쓴 글씨입니다. 현재의 종은 1985년 제작된 것이고, 옛 보신각 동종(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참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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