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야기

항전과 충절의 방패, 동래읍성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1592년 목판 한 장이 성 밖으로 던져진 자리를 지나는 길입니다.

주소찾기 편집팀 · · 수정 · 2분 읽기

복원된 동래읍성 성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가을 아침의 부산 시가지

지금의 부산 중심가는 서면이나 해운대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부산의 행정, 군사, 외교의 중심지는 '동래(東萊)'였습니다.

동래로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시작해 명륜동·복천동·칠산동을 지나 안락동까지 이어집니다. 옛 동래읍성 터를 끼고 도는 길입니다.

음력 1592년 4월 15일, 양력으로는 5월 25일.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군 1군(고니시 유키나가)은 여세를 몰아 동래읍성으로 향했습니다. 성벽을 에워싼 적장 고니시는 나무 팻말에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거든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주면 살려주겠다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이에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목판에 글을 적어 성 밖으로 던졌습니다.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

항전은 길지 않았습니다. 성이 버틴 시간은 두어 시간, 길게 잡아도 반나절이 되지 않습니다. 기록은 이 싸움에서 3천여 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조선군이 쓰던 무기는 활과 창이었고, 성벽을 넘어온 쪽은 조총 부대였습니다.

송상현 부사는 조복으로 갈아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한 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그의 결연한 기개는 적장마저 감동시켰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송 부사는 충렬사에 배향되었습니다.

그 충렬사는 정작 동래로 변에 있지 않습니다. 주소는 동래구 충렬대로 345, 안락동입니다.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도 마찬가지로 동래로가 아니라 수안역 안에 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 수안역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발굴된 해자 터가 그대로 놓여 있어, 출근길 승객들이 매일 그 위를 지나갑니다.

동래에 간다면 동래로만 걷지 말고 충렬대로 쪽까지 발을 옮기길 권합니다. 그날의 자취는 한 길에 모여 있지 않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사 안에는 발굴 당시 참혹했던 동래읍성 해자 터를 그대로 보존한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 있습니다.

참고 출처

이 글에 나온 주소를 여기서 바로 돌려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