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펼치듯 트렌드를 끌어당기는 시장길
시장 봉투를 들고 한강까지 걸어가는 길. 600년 전 왕실의 별서가 서 있던 강가입니다.

망원시장에서 닭강정 한 봉지를 사서 망원한강공원까지 걸어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 길이 망원로입니다.
망원로는 마포구 망원동을 가로질러 한강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건물번호 1번부터 99번까지, 이 길에 붙은 주소는 전부 망원동입니다. 골목골목 퍼져가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커피 향이 공존하는 곳이죠.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 명소였던 '망원정(望遠亭)'입니다.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한강 변에 지은 정자인데, 처음 이름은 망원정이 아니었습니다.
1425년 세종이 가뭄 끝에 이곳에 들렀다가 비를 만났고, 그래서 붙은 이름이 희우정(喜雨亭)입니다. '기쁜 비'라는 뜻이죠. '먼 경치를 바라본다'는 망원정이 된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성종 때 월산대군이 이 정자를 물려받아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바꿨습니다.
왕실과 사대부들이 한강의 풍류를 즐기고 수군 훈련을 참관하던 곳이었습니다.
망원동은 오랫동안 평범한 다세대주택 서민 동네이자 상습 침수 구역이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치솟는 홍대와 합정의 임대료를 피해 젊은 예술가들과 요리사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철물점이나 세탁소 옆에 감각적인 개인 카페, 소품샵, 이국적인 식당들이 들어서더니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순식간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망원로의 진짜 매력은 재래시장인 망원시장과의 공존에 있습니다. 트렌디한 카페에서 마카롱을 먹은 뒤, 바로 옆 시장에서 닭강정과 고로케를 사 들고 망원한강공원으로 피크닉을 가는 것이 서울 젊은이들의 클래식한 데이트 코스가 되었습니다.
600년 전 왕실 자제들이 풍류를 즐기던 그 강가에, 지금은 시장 봉투를 든 사람들이 돗자리를 폅니다.
알고 계셨나요? 망원시장의 수제 고로케와 닭강정은 줄을 서서 먹는 명물입니다. 2021년부터 상인회는 알맹상점 등과 함께 '용기내! 망원시장'을 운영합니다. 용기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집에서 빈 그릇과 장바구니를 챙겨 오면 쿠폰이나 마포공동체화폐를 주는 지참 캠페인입니다.